거제 포로수용소의 유적지
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지
소재지:경남 거제시 계룡로 61(고현동362번지)
이제 우리는 그들을 만납니다.멀지 않은 과거로의 여행..
6.25한국전쟁,민족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전쟁 그리고 포로의 체험..
거제포로 수용소는 1950년6월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2월부터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1951년 6월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중공군 포로 2만명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또한 거제 포로수용소는 1983년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 지정 보호되고 있다.
▼분수공원
▼매표소로 가는 길..
▼유적지의 첫번째 관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탱크 전시관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탱크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인사들이 양쪽으로 서있고 관람객이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중간에 설치하였다.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
국내 최초 세계 최대의 단일 디오라마관으로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배치 및 포로의 생활모습등을
고증을 거쳐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안내문)
▼친공포로들의 폭동
친공포로들의 조직적인 시위와 난동은 날로 악화되어 수용소장인 돗드준장을 납치하는 황당한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계속된 그들의 무력항거와 유혈폭동은 급기야 수용소를 무법천지와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안내문)
▼포병진지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 피난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자유를 향해 처절하고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오른 모습을 형상화하여 제작하였다.
▼M.P다리
1917년에 가설한 연초면 연사리 연사교에 1952년5월7일 '돗드'준장이 친공포로에게 납치되자 포로수용소
지역내의 주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유엔군 헌병검문소가 설치되었다 한다(안내문)
두분 친구들인가 봐요..그런데 왜 그리도 똑 같지요..뒷짐을 진 자세가...
▼여자포로관
300여명의 여자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한다.
▼포로 생활관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은 규정된 통제와 규율속에서도 제너바 협정에 의거 자율적인
내무생활이 상당부분 허용되었다 한다(안내문)
포로들의 생활하는 모습들이 담겨져 있는 포로생활관 입구
▼6.25 역사관
한국전쟁의 발발에서부터 휴전선에 이르기 까지의
치열했던 전쟁의 주요 과정과 참전 16객국 현황,피해현황,전쟁 속 삶의 모습등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흥남철수작전기념비
▼과거 포로 수용소가 있던 고현과 수월지구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포로사상 대립관
포로수용소내의 포로들은 점차 조직화되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진 채
사상대립 양상을 띄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서로간에 갈등과 증오가 시작되었다(안내문)
▼포로 설득관
판문점에서 송환희망 포로의 교환이 신속히 이루어 졌지만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에게는 자유의 몸이 되기위해서
본국의 집요한 귀한 압박에 강력히
맞서야 하는 시련이 기다고 있었다..자신의 의사결정이 존중되지 않은 시절..
▼포로귀환 및 송환열차
▼위령탑
▼수용소의 내무반에서 기능훈련
▼수용소 식당
▼현재 수용소 앞 거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