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들의 석재 가공기술로 축조된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
지정별:국보 제9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입장을 해야 진입할 수가 있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말에 세워진 석탑.
백제인들은 기존의 목조의 문제를 보완하고자 석재를 택하여 탑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미륵사지석탑에서 보이듯 목조탑을 재현하기에 그쳤으나 점차 석재가공기술의 발달과 부재의 간략화 규모 축소등을 통해
석탑의 시원적 양식으로 대표되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축조하였다 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美를 보여준다.
좁고 낮은 기단과 각 층 우주에서 보이는 민흘림,살작 들린 옥개석 단부,낙수면의 내림마루 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이
남아 있지만 목조의 모방을 벗어나 창의적 변화를 시도하여 완벽한 구조미를 보여 준다고 한다.
(부여 관광 안내문)
2012년 8월25일 오전 9시 30분
그럼에도 엄청 덥고 뜨겁다..여름에 나무 한그루 없는 정림사지를 둘러 보는 것은 양산이 필수..
남자들은 우산이라도 사용하여 내리쬐는 햇볕을 차단하면 조금은 나을 듯...
정림사지 내에 정림사지오층석탑.석조좌상,정림사지박물관이 한 울타리 안에 위치.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군을 편성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1층 몸체돌에
그 공적을 새겨 놓았다 한다.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말해 주는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라고 한다.
정림사지는 매우 정교한 수치에 의해 구성되었으며,특히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수리적 원리를 적용하여 비례를 맞추어 아름다워 보인다.
탑의 건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대석의 크기인데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지대석의 넓이가 14척이며
그 절반인 7척이 탑의 기본단위로 비례를 맞추어 축조하였다 한다.(관광 안내문)
탑 앞쪽의 연못.
이것은 평상시에는 연못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화재 시 소화용으로 사용했다 한다.
정림사지(定林寺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이다.
대한민국 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어 있고
가람배치는 전형적인 일탑식(一塔式) 배치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중문(中門)·석탑(石塔)·
금당(金堂)·강당이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고, 주위를 회랑(回廊)으로 구획지었다. 국
보 제9호인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보물 제108호인 정림사지 석불좌상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다음 백과사전)
보물 제 108호인 석조여래 좌상
고려시대에 조성된 작품으로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의 형체만 남아 있다.
회랑지
회랑지는 중문지에서 강당지까지 연결되는 합원형식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회랑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볼때
동서너비 약40미터,남북길이는 82미터인 것으로 산정된다고 한다.따라서 적심석의 간격으로 보아 회랑지의
평면은 정면 2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회랑은 요즈음 말로 하자면 복도 또는 통로*
(정림사지의 안내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