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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여의 부소산성

쉬엄쉬엄 여행 스캐치

by 춤추는 파랑새 2013. 4. 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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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성

2013년3월29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석혼축산성으로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둘레 2,200m, 면적 약 74만㎡.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감으며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1차로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泗沘城)·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538년(성왕 16)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국도를 수호한 중심산성이었다. 대개 성왕의 천도를 전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500년(동성왕 20)경 처음 테뫼식 산성을 축조하고, 성왕이 천도할 무렵

개축한 뒤 605년(무왕 6)경 완전한 성을 이룬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다음 백과사전 발췌)

 

 

 

 

 

 

 

 

 

 

 

 

▼삼충사

부소산성의 출입구인 부소산문을 통과 후  약간 올라오다 보면 양쪽으로 나누어지는

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약 50미터쯤에 삼충사가 자리잡고 있다.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고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40-1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제의 충신인 성충과 흥수 그리고 계백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57년 세운 사당이다.성충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이다. 흥수는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탄현을 지키라고

의자왕에게 간곡히 당부 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계백장군은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이다.(안내문)

 

 

 

 

 

 

 

 

 

 

 

 

 

 

 

 

▼반월루

백마강(白馬江)이 반달모양으로 끼고 도는 부소산(扶蘇山) 남쪽 마루에 있으며

부여 시가지(市街地) 전경(全景)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먼저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테뫼식 산성은 현재 군창(軍倉)터가 있는 곳으로

둘레 1,500m의 성벽을 등고선을 따라 거의 토축했는데,

일부 석축한 부분도 있다. 이 성 안에는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창 자리와 백제식 가람의 방형 건물터가 있으며,

유인원기공비(劉仁願紀功碑)도 이곳에 있다가 부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영일루(迎日樓)와 반월루(半月樓)가 있다.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 지점 사비루(泗沘樓) 부근에 약 700m 둘레의 테뫼식 산성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비루와 망루지(望樓址)가 남아 있다. 이 두 테뫼식 산성의 외곽선을

포곡식 산성이 연결하고 있어 백제의 독특한 산성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 발췌)

 

 

 

 

 

 

 

 

 

 

 

 

 

 

 

 

 

 

 

 

 

 

▼두 젊은 부부의 나들이 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함께 하는 여인이 힘들어할까 봐 아이를 앞에 안고 가는 모습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함이겠지요..

덕분에 아내는 뒷짐을 짓고 편안하게 걷고 있습니다.

멋진 부부를 위하여~~화이팅..

 

 

 

 

 

 

▼ 백화정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화재 자료 제108호로 지정.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은 정자이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구조는 육각형 평면을 가진 육모지붕으로 꾸몄다.

마루 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난간을 설치하였고, 천장에는 여러가지 연꽃무늬를 그려 놓았다.

(다음 백과사전 발췌)

 

 

 

 

 

 

 

 

 

 

 

▼백화정에서 낙화암으로 내려 가는 길..

 

 

 

 

 

 

▼낙화암

충남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한다. 『삼국유사』, 『백제고기』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다음 백과사전 발췌)

  

 

 

 

 

 

 

 

 

 

 

 

 

 

 

 

▼낙화암에서 바라 본  백마강

백마강 달밤에~물새가 울어 잃어 버린 옛날이 그립습니다..

 

 

 

 

 

 

▼백화정에 옆에 자리잡고 있는 천년송

남부여국 사비성에 뿌리 내렸네/칠백년 백제역사 오롯이 숨쉬는 곳/

낙화암 절벽위에 떨어져 움튼 생명/비바람 눈서리 다 머금고 /

백마강 너와 함께 천년을 보냈구나/세월도 잊은 그 빛깔 늘 푸르름은/

님 향한 일편단심 궁녀들의 혼이련가/백화정 찾은 길손 천년송 그마음

(천년송 안내문)

 

 

 

 

 

 

▼고란사

고란사(皐蘭寺)는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절로, 1984년 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현종 19년)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다음 백과사전 발췌)

 

 

 

 

 

고란사에서는 천연기념물 고란초와 한 잔 마시면 3년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는 고란약수를 맛볼 수 있다.

의자왕은 꼭 고란약수만 마셨는데, 물 떠오는 시녀가 혹시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올까봐 반드시 약수 근처서만 자라는

고란잎을 물 위에 띄워오게 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수질 검사결과 양호하다 하여 나도 한잔했다..참 시원하다.

 

 

 

 

 

▼고란사 유람선 매표소에서 유람선 입장권을 구입하여  백마강 달밤의 노래소리와 함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면서,보지 못한 주변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입장권은 구드래 선착장까지 편도 4,000원이며 구드래 선착장에서 하선 후 구드래 조각공원을 둘러본 후

약 15분 정도 걸어서 가면 부소산성 주차장 및 정문이 나온다.

가는길에 백제의 문화발굴터를 볼 수 있다.

 

 

 

 

 

▼유람선은 서서히 구드래 선착장을 향하여 움직인다..백마강을 따라서

 

 

 

 

 

 

▼조룡대

낙화암 바로 앞쪽의 작은 섬 모양 바위이다.옛날 당나라 군사가 백제의 왕이 있는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백마강을 거슬러 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할 수 없게 되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하여 그 연유을 알아내고는 수중바위에 걸터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서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린 곳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멈추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에는 지금도 그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안내문)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보니 백화정 부분에서 보지 못한 낙화암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었고

송시열선생이 써 놓았다는 빨강 글씨의 낙화암도 선명하게 보인다.

 

 

 

 

 

 

▼구드래 선착장

 

 

 

 

 

 

 

 

 

 

 

▼구드래 선착장에서 하선 후 약 2분거리에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니

감상하시고 하는 것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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