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익산의 미륵사지석탑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에 있는 탑으로,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6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다.기단(基壇)은 목탑과 같이 낮은 1단을 이루었다.
탑신(塔身)은 1층 몸돌에 각 면마다 3칸씩을 나누고 가운데칸에 문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으며,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웠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목조건축의 배흘림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재료인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본떠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화되며,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들 뿐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백제 말 무왕(재위 600∼641)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탑으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문화제청에서 퍼옴)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 때 왕비의 발원으로 지어진 사찰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는 현재 절터만 남아 있으며, 사적 제150호 익산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 외에 무왕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가 깃든 유물과 유적 등이 1966년에 발굴되었다.
미륵사는 용화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좌우 능선 사이에 평지에 남향을 향하여 건립되었다.
현재 서탑이 붕괴 위험 등으로 인하여 해체하여 복원 진행 중에 있다.
▼당간지주 뒷편에 보이는 대형창고 같은 건물내부에서 서탑은 복원중에 있다.
복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으니 방문하여 복원과정을 볼 수가 있다.
▼미륵사지 앞의 연못..이곳에도 전설이 있겠지요.
두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파란 잔디밭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미륵사지 당간지주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금마면 기양리 79번지와 93번지에 나누어져 있는 2개의 석재 당간지주를 말한다.
이 당간지주는 국가소유로 당시 호국불교의 상징이었던 미륵사의 경내에 있던 것으로
1963년1월21일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당간은 원래 사찰에서 문표 또는 종풍을 나타내는
종파의 기(旗) 즉 당을 달아두는 기둥이다.사찰경내의 전면에는 법당을 다는 당간(지주와지주 사이)을 세웠고,
당간을 지탱시켜주는 두개의 지주를 세웠다.이 두개의 지주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의 남쪽에 양쪽으로 90미터 간격을 두고 2기의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다.
대체로 당간지주는 하나의 사찰에 하나만 세우기 때문에 중문밖 입구에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나 미륵사지의 당간지주는
중원의 중심축선을 기준으로 좌우에 배치하고 있다.이 당간지주는 동탑과 서탑의 앞에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지주 밑에는 대석이 있고 지주 사이에 원형의 간대를 놓아 지주를 고정하였다.익산 미륵사지의 당간은 당간지주의
모양이나 크기 및 구조물 등을 고려하면 석당간이었음이 확실하다고 한다.
▼미륵산 아래 펼쳐지는 미륵사의 웅장함이 보고 싶어진다.
▼발굴된 석물을 보관하고 있는 장소..언제나 복원이 완료될련지...
불필요한 곳에는 정치적으로 예산을 엄청 편성하면서 문화재관리에는 0점인 것 같다.
▼미륵사지 석탑(동탑)과 당간지주
▼무너져 버린 미륵사지석탑..현재 복원 중
▼미륵사지목탑의 축소된 조형물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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