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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쉬엄쉬엄 여행 스캐치

by 춤추는 파랑새 2014. 10. 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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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5층석탑(국보 289호)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80-1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 마한 또는 백제의 궁궐터였다고

전해오는 왕궁리의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는 5층석탑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 수리하면서 1단의 기단에 5층의 탑신을 갖춘 모습이 되었다.
이 탑은 탑의 생김새나 여러 가지 이유로 미륵사탑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백제탑이라는 설과, 탑신부 돌의 짜임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초기 탑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탑이 해체될 때 탑에서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발견되었다.

이를 기초로 백제계 석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첨가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문화제청)

 

 

왕궁리 5층석탑에 도착한 시간은 어둠이 깔리는 해가 질무렵이었다.

제법 날씨도 쌀쌀하다.왕궁리 유적 발굴터를 돌아 볼 수 시간은 없어도 5층 석탑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노을과 어우러진 5층석탑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며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 형식과 비슷한 것 같다.

 

 

 

 

 

 

 

 

 

 

상세설명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 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에서 지금의 석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출처 문화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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