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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혼이 담겨져 있는 전주 경기전

쉬엄쉬엄 여행 스캐치

by 춤추는 파랑새 2013. 4. 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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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4월 25일 12:30분경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있는 전주의 경기전

비오는 날의 경기전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축제기간인데도 한산한 편이다.

어진이란 왕의 초상화란 뜻.

우박이 내리더니 기온이 떨어지면서 춥기도 하여 사진 촬영하기도 어렵다.

같이 간 사람이 우산이라도 좀 받쳐 주면 좋으련만~~춥다고 가게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으니 혼자 터벅터벅 ~~

옛 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경기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누전(樓殿)

 

 

 

 

 

▼경기전의 출입구

 

 

 

 

 

 

 

 

 

 

 

 

 

 

 

▼경기전의 조선 태조 어진

이 어진은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를 그린 초상화이다.경주,평양 등지에 모셨던 이성계의 어진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리고,전주 경기전의 어진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어진은 고종9년(18720에 기존의 낡은 어진을 태워 묻고,서울 영희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본떠 새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임금이 국가의 일을 할 때 차려입은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채,두손을 가지런히 마주잡고

의자에 앉아 있는 태조의 정면 모습이라고 한다.얼굴과 옷 주름을 처리한 음영기법,의자와 자라의 화려한 색채,어께에 그린 용의

금박효과등에서 어진이지만 높은 품격이 보인다.한 왕조를 세운 인물의 위엄이 시대를 뛰어 넘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여 스크랩한 사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987년에 보물로

지정됐던 `조선태조어진`을 국보 317호로 승격한다고 29일 밝혔다. 이성계 어진은 1872년 제작된 것으로

당대 최고의 화사들이 원본을 충실히 옮긴 덕에 조선 초기 선묘 위주의 초상화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이성계 어진은 현재 완전한 형태의 어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데다 이 어진과

관련된 `경기전의(慶基殿儀)`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 등의 자료를 통해 어진 제작의 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왕의 전신 어진으로는 유일한 자료"라며 "예술적ㆍ학술적 가치는 물론 상징적인 가치도

매우 높아 국보로 승격됐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경기전의 부속 건물들..같이 한번 들어가서 확인해볼까요?

 

 

 

 

 

 ▼수복청

이곳은 경기전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낮은 직급의 벼슬아치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살림집의 안채와 같은 형식이지만  주로 큰일이 있을 때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 기간 임시로 거치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세조실록> 세조8년8월6일조에 의하면

전주 경기전에 수복의 수가 관노(종) 1명,양민(일반백성) 18명이 교대로 지켰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수복청에는 항상 몇명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안내문)

 

 

 

 

 

 

 

 

 

 

▼경덕현

경덕현은 경기전을 지키는 수문장이 일을 맡아보는 곳이라 한다.

경기전의 (경기전의 규모와 연혁,제사를 맡은 관원의 역활과 각종 제사 절차 등을 한자 등으로 기록한 책)에

수문장청(조선시대 궁궐문을 지키던 수문장들의 소속 관청)을 갑자년 신설하여

을축년 준공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경덕현은 수문장청에 붙여 이름이라고 한다.

(안내문)

 

 

 

 

 

 ▼동재(東齋)

동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집으로 재각(무덤이나 사당의 옆에 제사의 소용으로 지은 집)이라고 하며

제향(제사)을 맡은 관원들의 재계의식을 하기 위한 곳이라고 한다.재계의식은 제사에 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신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안내문)

 

 

 

 

 

 ▼서재(西齋)

서재는 동재와 같은 뜻으로 위치에 따라서 동재,서재로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싶다.

 

 

 

 

 

▼마청

경기전의 의식이나 관청,관리의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청을 두었다.특히 조정에서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의말을 두는 곳이라고 한다.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된 고지도에는

마청의 그림이 없으며 이후 제작된 문화재연구소소장 고지도와 경기전의에 마청이 나타난다(안내문)

 

 

 

 

 

 ▼경기전의 매표소와 출입구의 모습

은행나무에 싹이 파릇파릇 돋아 나면서 봄의 기운을 가지고 오는데 아직도 겨울은 물러서질 않고 버티고 있다.

오늘따라~~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날씨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경기전 입구의 하마비.

 

 

 

 

 

▼경기전  앞의 꽃길..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담는 모습.

역시 청춘이 좋다. 꿈과 열정이 있으니...비가 오면 어쩌라~~ 젖으면 되는  것을..

 

 

 

 

 

▼경기전 내부의 나무들~~ 나무에는 봄이 오는데 날씨는 겨울날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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