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였습니다.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 건물을 이용하여 진열관을 열었습니다. 이 진열관은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어 광복 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은 큰 획을 긋게 됩니다.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건물을 새로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긴 것입니다. 당시 동부동에서 인왕동으로의 박물관 이전은 경주에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는데, 특히 성덕대왕신종의 이전은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행사로 유명합니다. 1975년 당시에는 본관(지금의 신라역사관)과 별관(지금의 특별전시관)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을 위한 종각이 지어졌습니다. 설계자는 이희태(1925~1981)입니다. 외부에 기둥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누각 형태의 본관은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홈페이지에서 퍼옴)
광복 이전에도 경주에는 박물관 형태의 조그마한 진열관이 있었습니다.
2015년2월11일 오전
신라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국립 경주박물관 전시관..
내부 사진촬용을 금하고 있어 촬영할 수가 없어서 외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들을 담았습니다.
참고로 박물관을 관람할때는 관람실 입구에 설명하고 있는 해당관에 대해서 알아보고
더 나아가 조금 더 작은부분으로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을 관람하면 쉽게 해당관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박물관 본관의 뒤에서 본 모습
▼ 정문옆에 있는 승소골 삼층석탑
승소골 주변에서 출토 되어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통일신라 9세기경 작품으로
높이는 3.77미터라고 합니다.
▼ 승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두마리의 거북이 붙어 있는 이 비석받침은 경주 외동읍 말방리 승복사 터에 있던 이곳으로 옮겨와 전시하고 있습니다.
▼ 석탑 몸돌에 새겨진 부처
▼ 성덕대왕 신종
종은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그리고 의식을 거행할 때 쓰였습니다.
특별히 절에 있는 종은 불교를 의미하는 "범(梵)"자를 붙여 범종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 석조 불두
이 부처 머리는 한차례 큰 태풍이 지나간 후 경주 남산 철화골에서 발견되었으며
1959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8세말~9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 석조관음보살
▼ 경주 국립박물관에 전시중인 석가탑과 다보탑 모형
진품과 똑 같은 규격으로 제작을 하여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합니다.
▼ 미륵삼조불
경주 남산 장항동에서 출토되었으며 신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이 세구의 불상들은 경주 남산 북쪽 봉우리 아래 골짜기인 장창골의 한 석실에 있던 것입니다.
1925년 가운데의 본존불을 박물관으로 옮겼고 양옆의 협시보살들도 비슷한 시기에 옮겨 왔다고 합니다.
가운데의 본존불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즉 의사좌 이며 두 협시보살들은 천진난만한 미소 때문에 "아기부처:
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 비석 받침
경주 고선사 터에서 출토(통일 신라시대 9세기 초)
원효대사의 손자 설종엽이 원효대사를 기리며 고선사에 세운 비석받침이라고 합니다.
거북을 닮은 받침돌의 머리부분은 없어지고 몸통부분만 남아 있는 것.
▼ 고선사터 삼층석탑
이 탑은 원래 고선사에 있던 것으로 1976년 고선사터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자 이 탑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문화재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왔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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